
작가는 '운명'에서 "우리는 모두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입니다. 이 별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소멸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 신성한 섭리가 바로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짧지만 잊혀지지 않는 관계, 때로는 후회와 함께. 혹은 끊임없이 감사하고 다정한 관계….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삶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관계의 다양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저자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들이지만 누군가 때문에 웃거나 울었던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칠순이 다 되어 어릴 때도 거의 쓰지 않던 화장을 하기 시작한 늦깎이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 늘 회색 두루마기에 촌스러운 버선을 쓰고 다니는 또래들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엄마가 부끄러웠습니다. 엄마가 학교에 오지 못하게 선생님께 내내 거짓말을 했습니다. 친척이 살지 않는 강릉에 외가를 만든 뒤, "엄마가 외가에 갔다"고 말했습니다. 수업 참관 당일 엄마의 초라한 모습에 당황한 그녀는 친구들에게 "엄마가 아니라 할머니"라고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회색 도포를 입고 학교에 온 어머니가 다른 부모들과 몇 피트 떨어진 곳에서 혼자 걸어가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온실 뒤로 숨었습니다. 반면에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온실에 있는 꽃을 보여주기 위해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적을 찾기 위해 경비병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초라한 어머니를 훔쳐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후 어머니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그날 캠퍼스 뒷마당을 천천히 걸었던 기억을 떠올린다고 합니다. "오래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화장을 했던 날들이 생각납니다. 어머니는 여자로 태어나 어머니로 살다가 여자로 돌아가셨습니다. 다시 어머니를 볼 수 있게 된다면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환하게 웃어드리고 싶습니다."
작가는 늦깎이 엄마를 부끄러웠던 지난 날의 모습을 회상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시절. 철이 없던 시절의 그 모습을 떠올릴 때면 작가는 마음이 아려옴을 느낍니다. 다시 돌아간다면 당당히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외칠 수 있을텐데, 분명 그럴 수 있을텐데. 하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고, 작가는 늙어버린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너무 늦어버렸음을 한탄합니다. 왜 어린 시절의 자신은 이토록 철이 없고 어리석었는지. 왜 뒤늦게 나이를 먹어서야 그 때의 일을 떠올리는 것인지. 어떤 후회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변하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I will not abandon this relationship until I lie down in my place of death and close my eyes forever. I will walk on that snowy blank sheet of paper so that the humble writings I have written can be a little comforting snow on this poor world and a point of warmth under that naked blanket."